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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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황금광시대를 연 운산금광 이야기
한국광업협회 전무 이건구

평안북도 운산군에 위치한 북한최대의 금광산인 운산광산은 일제시대부터 개발되어 한반도에 금광개발의 역사를 열어준 중요한 광산이다. 현재 알려진 매장량은 금 15톤(금속기준)으로 아직도 북한 최대의 금 채굴 광산이다. 본 고는 한국광업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운산금광산을 역사적 관점에서 전문가의 글을 빌려 조명해 보고자 한다.

 

한반도에도 골드러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1849년 미국 캐리포니아 골드러시, 1851년 호주 남부 빅토리아주에 불어 닥친 골드러시와 마찬가지로 1930년대 한반도 방방곳곳에 금광개발 광풍이 몰아친 황금광시대가 있었다.

황금광시대가 도래케 된 시대상황을 보면, 일본은 중국과 대규모의 전쟁(중일전쟁 1936년~1945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수물자(미국에서 수입하는 제철원료인 고철 등)를 대량 수입하는 수단으로 금이 필요하였다.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일본은 통상적인 무역으로는 해결하지 못하고 금으로 대금을 치러야만 그러한 물자를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최대한 금을 많이 생산하고 싶어 했으며 1930년대에 일본 총독부는 각종 정책과 예산을 책정하여 금광개발을 독려했고 시중에 나오는 금은 일본 총독부가 비싼 값에 매입하였다.


[시대상 황금광시대(조선일보 1932.11.26_4면)]

한반도에 황금시대를 연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운산금광이다. 대량의 금이 발견된 운산금광은 조선 최고의 재산을 가진 재벌가 대열로 이를 수 있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많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 금광맥을 발견하기만 하면 무일푼인 서민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로 운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황금왕을 꿈꾸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금맥 찾기에 혈안이 되어 개발 광산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조선 땅에 금광열풍이 불게 되었다.

당시 동양 최대의 금광이 된 운산금광산의 연혁을 보면, 1895년 일본인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전에 고종황제는 미국 공사관 서기관인 호레이스 앨런에게 개발권을 주었으나 외교관 신분이라 의료 선교사로 온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게 이전하였다. 모스는 평안북도 운산군 일대 28억평(352㎢)에 달하는 광구에 대한 독점적 채굴권을 부여받았고 설비와 자재에 대한 무관세 통관은 물론 법인세, 소득세 등 일체의 세금도 면제받았다. 조선정부는 운산금광에 25년간 채굴을 승인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광구 제1호의 광업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금광개발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모스는 1897년 헌트(Hunt)에게 3만 달러를 받고 개발권을 양도하였으며, 헌트는 자본금 500만 달러를 들여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동 광산은 1898년 우리나라 최초로 압축기를 이용한 착암기를 사용하였고, 1900년에는 한국 최초로 기계도광기, 도태반, 부선기 등 현대적인 장비와 청화제련법을 도입하여 대규모로 금을 생산하였다.

개발규모가 점차 커져감에 따라 운산금광은 등록된 광부만 하여도 만여 명이 넘는 동양 최대 규모의 금광으로 발전하였다. 생산규모는 1902년에 금 생산액이 당시 조선정부 연간 예산의 1/4 이상*이나 되었다.

* (조선정부의 연간 예산액은 600만원인 데, 운산금광의 년 생산액은 150만원)

1925년에는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된 광산기술자로 후버(HOOVER)가 다녀갔고, 이곳에 건립한 광대한 휴게시설은 극동지역에 와 있는 미국인을 위시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양인들의 하계휴양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금광! 금광!(신동아 1934.9)]

대량의 황금이 쏟아져 나오는 운산금광을 운영한 동양광업은 1903년부터 이익을 배당하기 시작하여 1938년 까지 36년간 매년 10 % 이상의 고율의 배당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배당금 총액은 투자금의 3배에 달하는 1,467만 달러에 이르렀다.

일본이 중국 침략전쟁을 시작하면서 미일관계가 악화되었고 미국은 일본의 군비확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고철을 금수하면서 전쟁수행에 필요했던 금의 수요도 없어졌다. 조선에서 황금시대를 이끌어 온 동양광업도 1939년 일본광업에 800만 달러에 운산금광을 양도하고 철수함에 따라 한국에 불었던 황금시대도 막을 내렸다.

   
목차

· [기획기사] 운산금광
· 언론동향
· 남북간 반입 실적(5월)
· 북중간 무역 실적(4월)

북한 광산물 대외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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